3개월 날린 후에 깨달은 것
작년에 AI 이메일 요약 앱 만들었다. 3개월 걸렸다. 퇴근하고 매일 2-3시간씩 코딩했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했다. 진심으로 열심히 만들었다.
출시하고 보니까 가입자 23명. 거의 다 이탈. 지금 남아있는 활성 유저는 2명인데, 그중 하나는 나다.
뭐가 문제였을까 #
한참 생각했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었나? 아니다. 잘 돌아갔다. GPT API 붙여서 이메일 요약 잘 해줬다. UI도 나름 신경 썼다.
마케팅을 못 했나? 그것도 아니다. 레딧에 글 올리고, 트위터에 공유하고, Product Hunt에도 런칭했다. 조회수는 꽤 나왔다.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 걸 만든 거였다.
"이메일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 힘들다"는 말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그래서 당연히 수요가 있을 줄 알았다. 근데 막상 만들어서 보여주니까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냥 Gmail 자체 기능으로 충분한데?" "스팸 필터랑 검색이면 되지 않나?"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다. 이메일 많다고 불평은 하는데, 실제로 돈 내고 뭔가 쓸 생각은 없었다. 그냥 투덜대는 거랑 실제로 해결책을 찾는 건 다른 거다.
왜 검증을 안 했을까 #
사실 검증 없이 만든 이유가 있다.
만드는 게 재밌었다. API 연동하고, UI 만들고, 이것저것 기능 붙이는 게 즐거웠다. "유저 인터뷰" 같은 건 귀찮았다. 모르는 사람한테 연락해서 뭐 물어보는 게 어색하기도 했고.
그리고 솔직히 자신 있었다. "이 정도면 다들 쓰겠지" 싶었다. 지금 보면 완전 착각이었는데, 그때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코드 짜는 건 혼자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는 물어봐야 안다. 당연한 건데 왜 그걸 건너뛰었는지 모르겠다.
비싼 수업료 #
3개월이면 대충 200시간 정도다. 시급 2만원으로 계산하면 400만원어치 시간을 날린 거다. 거기다 GPT API 비용, 서버비 합치면 실제로 20만원 넘게 썼다.
비싼 수업료였다. 근데 이거 겪고 나서 확실히 배웠다.
지금은 이렇게 한다 #
그 뒤로는 만들기 전에 먼저 물어본다.
1단계: 랜딩페이지부터 만든다.
Carrd 쓰면 30분이면 만든다. "이런 문제 겪고 있지 않으세요?" "이런 솔루션 나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이런 내용으로 간단하게. 그리고 이메일 수집 폼 하나 넣는다. "런칭하면 알려드릴게요."
[문제 설명]
매일 100통 넘는 이메일. 중요한 거 놓치기 쉽다.
[해결책]
AI가 자동으로 분류하고 요약해줍니다.
[CTA]
이메일 남기시면 런칭 시 알려드릴게요 →
2단계: 사람들한테 보여준다.
레딧 관련 서브레딧에 올린다. "이런 거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트위터에도 공유한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보여준다.
3단계: 반응을 본다.
이메일 10개도 안 모이면 그냥 접는다. 관심이 없다는 거다. 50개 넘게 모이면 그때 만들기 시작한다.
실제로 이 방식으로 2개 아이디어를 접었다. 랜딩페이지 만들어서 일주일 돌렸는데 이메일 3개밖에 안 모였다. 그냥 포기. 아쉽긴 한데 3개월 날리는 것보다 100배 낫다.
아이디어 검증하는 다른 방법들 #
랜딩페이지 말고도 방법이 있다.
경쟁 제품 분석: 비슷한 게 이미 있는지 본다. 있으면 시장이 있다는 뜻이다. 없으면? 시장이 없거나 내가 천재거나 둘 중 하나인데, 보통은 전자다.
커뮤니티에 질문: "이런 문제 겪는 사람?" 해보면 반응 온다. 진짜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댓글로 신세한탄을 한다. 그런 댓글이 없으면 그닥 불편한 게 아니라는 뜻.
직접 물어보기: 주변에 타겟 유저가 있으면 커피 한 잔 사고 물어본다. "이런 문제 있어?" "지금은 어떻게 해결해?" "돈 주고 쓸 의향 있어?" 다섯 명만 물어봐도 감이 온다.
프리토타입: 기능 없이 껍데기만 만들어서 반응 보는 거다. 버튼 누르면 "준비 중입니다" 뜨게 해두고, 몇 명이나 누르는지 본다.
지금 생각 #
3개월 날린 게 억울하냐면, 지금은 아니다. 그때 안 겪었으면 다음에 6개월 날렸을 수도 있다.
만들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게 제일 어렵다. 아이디어 떠오르면 바로 코딩하고 싶어진다. 근데 일주일만 참고 검증하면 몇 달 아낄 수 있다.
요즘은 "이거 만들면 쓸 사람 있을까?"를 매일 생각한다. 대답이 "아마도?"면 만들면 안 된다. "당연하지, 나부터 쓴다"여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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