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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gedaisy

6개월 만들다가 반절 쳐내고 2주 만에 출시한 이야기

6개월째 만들고 있는 앱이 있었다.

일일 할 일 관리 앱. 비슷한 거 많은 거 알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동작하는 게 없어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작년 3월에 시작했다.

시작할 때는 금방 될 줄 알았다. "한 달이면 되겠지" 싶었다.

기능이 계속 늘어났다 #

처음 기획은 단순했다.

이 정도면 2주면 만들 것 같았다. 근데 만들다 보니까 "이것도 있으면 좋겠다" "저것도 넣어야지" 하면서 기능이 늘어났다.

기능 목록이 30개가 넘었다. 만들어도 만들어도 끝이 안 났다.

퇴근 후 코딩의 한계 #

본업이 있으니까 퇴근하고 코딩한다. 하루에 2시간 정도. 주말에는 좀 더 하고.

처음엔 재밌었다. 한 달 지나니까 좀 지쳤다. 두 달 지나니까 "이거 언제 끝나지" 싶었다. 세 달 넘어가니까 코드 열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8시간 일하고 와서 또 코딩하는 게 쉽지 않다. 체력도 문제고, 집중력도 문제다. 피곤하면 버그도 많이 만든다. 다음 날 보면 "이걸 왜 이렇게 짰지" 싶은 코드가 있다.

6개월째 되니까 거의 번아웃이었다.

현타가 왔다 #

어느 날 기능 목록 보다가 현타 왔다.

"이거 다 하려면 1년은 더 걸리겠다."

진지하게 계산해봤다. 남은 기능 20개. 기능당 평균 일주일. 5개월. 근데 테스트하고 버그 고치고 하면 1년은 걸린다. 1년 더?

그러면서 드는 생각. "이거 출시해서 누가 쓸까?" 확신이 없었다. 6개월 만들었는데 검증은 0이다. 아무한테도 안 보여줬다. 내가 쓰려고 만드는 건데, 이미 시중에 있는 앱들로 그냥 쓰면 안 되나?

포기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반절 쳐내기 #

포기하기 전에 한 번만 다르게 해보자 싶었다.

기능 목록 다시 봤다. "이거 없으면 앱 의미 없다" 싶은 것만 체크했다.

끝.

반복 할 일? 나중에. 태그? 나중에. 통계? 나중에. 다크모드? 나중에. 위젯, 알림, 동기화? 전부 나중에.

30개 기능 중에 3개만 남겼다. 90% 쳐냈다.

쳐내는 게 제일 어려웠다. "이거 없으면 별로인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근데 출시 안 하면 아무 의미 없다. 기능 많은 미완성보다 기능 적은 완성이 낫다.

2주 만에 출시 #

기능 쳐내니까 2주 만에 끝났다.

핵심 기능은 이미 만들어놨으니까. 정리하고, 버그 잡고, 스토어 준비하는 데 2주. 6개월 삽질하다가 2주 만에 출시하니까 허무하기도 하고.

앱스토어에 제출했다. 이틀 만에 승인 나왔다. 진짜 나갔다.

출시 후 반응 #

물론 부끄러웠다.

다른 앱들이랑 비교하면 기능이 너무 없다. Things, Todoist 같은 거 보면 기능이 수십 개인데 내 건 3개. "이걸 왜 쓰지?" 싶었다.

근데 일단 냈다.

의외로 쓰는 사람이 있었다. 첫 주에 다운로드 50개. 많지 않지만 0은 아니다. 리뷰도 달렸다.

"심플해서 좋아요" "딱 필요한 것만 있어서 오히려 좋음"

기능 없는 게 장점이 될 줄은 몰랐다. 복잡한 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반복 기능 넣어주세요"라는 요청도 왔다. 그건 그때 가서 넣으면 되는 거다. 진짜 필요한 기능이 뭔지 유저가 알려준다. 내가 상상으로 만드는 것보다 낫다.

배운 것 #

MVP는 진짜 최소여야 한다

Minimum Viable Product. 다들 아는 개념인데 실천이 어렵다. "이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것도 없어도 된다. 진짜 핵심만.

내 기준: "이거 없으면 앱을 켤 이유가 없다"는 것만 남긴다.

출시가 시작이다

6개월 만들면서 유저 피드백은 0이었다. 2주 만에 출시하니까 피드백이 온다. 뭘 원하는지, 뭐가 불편한지. 이게 진짜 정보다.

만들면서 상상하는 것보다 출시하고 듣는 게 100배 정확하다.

완벽은 없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이것만 추가하면" 이러다가 영원히 출시 못 한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부끄러워도 낸다.

6개월 만들다 출시 못한 것보다, 2주 만에 엉성하게라도 출시한 게 백배 낫다.

지금은 월 다운로드 200개 정도. 대단한 건 아니지만, 실제로 쓰는 사람이 있다. 기능도 조금씩 추가하고 있다. 유저 요청 중에 많이 온 것 위주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최소한 시작은 했다.